
지난 9월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의 ‘소금빵 990원’ 판매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슈카월드의 빵 가격에 “우리가 속고 있었다”, “밀가루, 계란 등 담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빵값이 제일 비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360만 구독자를 보유한 경제 유튜브 슈가월드는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 현상에 대응해 가성비 있으면서도 맛있는 빵을 만들어보고자 기획을 했지만 바램과는 다른 방향으로 빵 가격 논란이 일고 있다.
슈카월드의 주요 빵 가격은 △소금빵, 플레인 베이글, 바게트 990원 △무화과베이글 1990원 △명란바게트 2450원 △오메기 단팥빵 2930원 △표고버섯 트러플 치아바타 3490원 △복숭아 케이크 2호 1만8900원 등이다.
이렇게 싼 가격에 빵을 판매할 수 있는 데에는 원재료를 산지에서 직수입해 유통을 줄이고 영업이익을 고정해 판매가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또 원가에 배수율을 곱해 판매하는 것이 아닌 빵 1개당 영업이익을 고정해 원가 대비 판매가가 크게 오르지 않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슈카월드는 코믹스 채널 ‘이런 식빵’ 시리즈에서 빵값 상승의 배경이 되는 인건비·원재료 비용 구조를 분석했다. 그는 “2022년 우-러 전쟁 당시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 빵값이 많이 올랐다”며 “2024년부터 다시 2010년대 가격으로 내려왔지만 빵값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빵값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번 팝업을 기획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밀가루·달걀이 ‘빵값’ 상승 견인

9월 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8월 빵 물가지수는 138.61(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7%인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에 달하며 SKT 통신 요금 인하 정책을 제외하고 통계청이 추정한 소비자 물가상승률 2.3%와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빵 가격이 급등한 것은 2023년 7월 8.6%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빵값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1% 미만 상승률을 기록했으나 △12월 3.3% △2025년 1월 3.2% △ 2월 4.9% △3월 6.3% △4~7월 6.4% 등이다. 특히 올해 3월 6%대로 크게 뛴 뒤 6개월 연속 6%대를 유지하고 있다.
빵값이 상승한 데에는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달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밀가루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2023년 9월 전년 동월 대비 45.5% 급등한 뒤 이듬해 9월 –3.8% 하락했고 이후 –1.4~0.1%대를 보이며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러·우 전쟁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달걀 가격은 지난 4월 이후 꾸준히 올라 8월에는 지난해 동월 대비 8% 상승했다.
빵값이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슈카의 EFT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빵 가격이 △소금빵·베이글·바게트 990원 △식빵 1990원 △명란바게트 2450원 △단팥빵 2930원 등 총 35종의 빵과 케이크를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슈카는 “식품 가격이 소비자 한계에 도달했고 특히 빵값이 급등했다”며 “산지 직송으로 원가를 낮추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빵 모양을 단순화했으며 마진을 ‘율’이 아닌 ‘액수’ 기준으로 책정해 가격 인상을 억제했다”고 설명했다.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슈카 EFT베이커리를 두고 일부 자영업자들은 소비자들이 기존 빵집들을 “과도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빵집을 운영하는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슈카가 판매하는 빵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기준이 돼 원래 판매하던 빵 가격이 비싸다는 항의를 받았다”며 “이벤트성으로 잠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지만 상시 판매는 불가능하다. 밀가루, 달걀 등 원재료 가격이 상승과 전기료, 임대료 등을 생각하면 990원 소금빵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빵값에 숨겨진 비밀
국내 빵값이 주요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23년 공주대 산학협력단이 공정거래위원회 의뢰로 수행한 ‘제빵산업 시장분석 및 주요 규제 경쟁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빵 소비자물가지수는 129로 미국(125), 일본(120), 프랑스(118)보다 높았다.
이는 빵 100g당 평균 가격이 한국 703원인데 반해 프랑스 609원, 미국 588원, 호주 566원 등의 수준이다. 한국 빵 가격이 비싼 데는 구조적인 배경이 크다. 빵을 만들 때 필요한 주재료인 밀가루, 설탕, 견과류, 올리브유 등 핵심 재료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빵 제조 비용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로 알려져 있지만 밀가루와 설탕이 원재료비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 가격 변동이 곧바로 원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해당 보고서는 최종 결론을 비공개했지만 설탕·계란·우유 등 주요 원재료가 가공·유통되는 과정에서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봤다. 양산빵 소매 시장에서 SPC삼립의 매출액 점유율이 80%에 달해 사실상 독점력이 존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빵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호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간식용 디저트빵을 선호하는 반면 한국 소비자들은 우유와 버터가 많이 들어가고 다양한 토핑이 포함된 제품을 선호한다. 소금빵만 하더라도 일본과는 달리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유통된다.
이러한 소비자 기호에 제과업체들은 기존 빵에 앙버터, 초콜릿, 크림 등을 추가해 유통하고 있다. 기존 빵에서 토핑을 추가했기 때문에 빵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제과점을 운영하는 B(56)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리지널 빵과 토핑이 추가된 빵을 판매하는 것을 놓고 보면 90% 이상이 추가된 빵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토핑이 추가되지 않은 빵은 마감 전이나 다음 날 할인된 가격일 때 잘 팔린다”고 말했다.
또 빵을 만들 때 필요한 달걀과 우유의 한국 생산 단가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생산 단가가 높은 이유는 생산 규모가 작아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 생산되는 달걀과 우유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낙농업은 공급자가 비용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고 정부가 일정 가격 이하의 판매를 규제하는 보호 산업이다. 달걀도 마찬가지로 생산자 단체가 산지 가격을 고시하지만 이는 실제 거래 가격이 아니라 농가와 상인간 협상에 따라 달라진다.
‘인건비’와 ‘판매관리비’도 빵 가격을 상승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 제과 전문점은 다른 전문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영업시간도 긴 편이다. 인력 의존도가 높고 영업시간도 길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아침 출근길 빵으로 아침을 때우려는 직장인들이 많아 새벽 일찍 가게를 오픈하고 빵을 굽기를 시작한다. 또 저녁 늦게는 내일 아침을 위해 빵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있어 영업시간을 저녁 10시까지 운영하는 가게도 있다.
실제로 빵 가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8.7%로 이는 전체 식품제조업 평균인 8.1%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특히 프랜차이즈 전문점의 경우 할인행사나 가맹점 지원 등이 포함된 판매관리비가 빵 가격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프랜차이즈 빵 원가에 판매관리비는 42.4%로 재료비 31.6%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홍연아 공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빵값 상승은 특정 요인 하나보다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가격 상승의 원인을 단순히 원재료비 상승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가중치로 보면 여전히 원재료 비중이 크지만 인건비와 임대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공정위, 밀가루 업체 담합 조사 나서

9월30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업계의 담합과 독점으로 생활 물가가 상승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지난 16일 공정위는 국내 주요 밀가루 업체 담합 협의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당아원 △대선제분 △삼양사 △삼화제분 △현탑 등 7개 제분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고 10월16일 밝혔다.
현장조사에 나선 조사관들은 각 업체 본사에서 가격 협의나 출하 조정 등 불공정 거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현장조사는 이른바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원재료 시장 전반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있다.
공주대 산학협력단이 공정위 의뢰로 수행한 ‘제빵산업 시장분석 및 주요 규제 경쟁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빵 소비자물가지수는 129로 △미국 125 △일본 120 △프랑스 118 등 주요국보다 높았다.
이 대통령은 “물가라고 하는 것이 사실 담합 가능성도 높다. 정부가 (물가 안정화에) 작동하지 않은 측면이 강한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유통망을 (특정 기업이) 대부분 독과점하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정부 정책이 시장을 이길 수도 없지만 시장도 정부 정책을 이길 수 없는 관계”라며 “고삐를 놔주면 담합하고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는 폭리를 취한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눈 똑바로 뜨고 기준을 똑바로 만들어서 엄격하게 제시하고 엄정하게 관리하면 정부 마음대로는 안되지만 또 시장 마음대로 하는 건 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 대해 공정위 측은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밀가루 담합 조사에 이어 공정위는 10월 중으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의 ‘설탕’ 담합 관련한 제재 절차(심사보고서 발송)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공정위는 4월 과자업체에 이어 6월 대한산란계협회를 대상으로 계란 가격 관련 담합 여부를 조사했다. 공정위는 산란계협회가 주도해 발표하는 고시 가격을 회원사가 따르도록 강제하며 계란 가격을 견인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물가 관련 조사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