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캄보디아 관련 실종·감금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사망한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캄보디아 관련 실종·감금 신고가 잇따르자 경찰은 코리안데스크 설치와 경찰 영사 확대 배치, 국제 공조수사 인력 보강,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모니터링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캄보디아의 범죄단지에서 대거 발생한 취업사기·감금 등의 사태는 2022년 10월 캄보디아 코로나19 관련 입국제한이 완전히 풀린 직후부터 발생했으며 지난 2024년 8월 KBS 뉴스9 보도로 최초 공론화됐지만 한동안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최초 보도 후 1년이 지난 2025년 10월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취업사기 등 범죄 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15년 KBS 추적60분을 통해 방영된 ‘캄보디아에 갇힌 청년들’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의 범죄행위와 비슷한 보이스피싱, 취업사기 등의 형태였으며 2020년대가 아닌 2015년 그 이전부터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험담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3월 SBS 예능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한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2018 U-23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한 후 아내와 캄보디아 여행을 갔다”며 “베트남에 밤 10시께 도착했는데 공항에 택시가 없더라. 누가 멀리서 ‘택시’하면서 오길래 탔는데 음악 소리부터 이상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을 매일 다니니까 길을 알지 않느냐. 근데 갑자기 산길로 가 기사가 ‘나를 모르나 보다’ 싶었다. 한참을 가더니 외딴 공터에 차를 세워 ‘납치됐구나’ 싶었다”며 “기사가 내리더니 종이에 사인을 하라고 했는데 그때 문을 박차고 나와보니 10명 정도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10명 중 한 명이 ‘미스터 박? 박항서?’라고 묻더라”면서 “대화 내용을 추측 해보니 ‘저 사람 왜 데려왔어? 박항서야, 빨리 보내’라는 것 같았다. 대장 같은 사람이 오더니 아내랑 나보고 차 타라고 해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때는 아찔했지만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2022~2023년에는 연간 10~20건 수준이었지만 2024년에는 220건, 2025년 1~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했다. 한국인 대상 범죄가 급증한 이유는 이 범죄 대상이 점차 확대됐고 한국을 대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구조하고 있는 오창수 선교사는 YTN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여기에) 한국 사람들이 온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몸값이 제일 비싸다. 한국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얻는 수익이 제일 크다”며 “한국인들을 중국인에게 팔 때 1만 불, 1만5000불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10월22일 국회 정보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국정원으로부터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 관련 사항을 보고받았다. 국정원은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스캠 범죄와 관련해 한국인 가담자가 1000~2000명으로 추산된다고 정보위에 보고했다. 또한 캄보디아 경찰청이 지난 6~7월 검거한 전체 스캠 범죄 피의자 3075명 중 한국인은 57명이라고 밝혔다고 정보위에 전했다. 국정원은 최근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이들에 대해 “피해자라기 보다 대부분 번죄에 가담한 사람이라고 보는 게 객관적”이라고 설명했다.
제 역할 하지 못한 ‘대사관’
10월17일 외교부 차관이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해 신속한 대응과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현지 대사관에서는 여전히 구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사실이 확인됐다. 납치돼 여권이 말소된 피해자에게 여권을 요구하고 지속된 구제요청을 거부하다 업무종료를 이유로 피해자를 방치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 논란에 대해 지엽적이라며 일축했던 입장과 달리 6개월 전 유사한 사례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17일에 있었던 피해자 구제에 도움을 준 것은 캄보디아 현지 파견된 기자들이었으며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되자 그제서야 인적사항을 조회해 긴급여권을 발급 받아 귀국할 수 있었다.
2024년 11월 주캄보디아 대사관이 120억 원대 로맨스스캠 사기 조직 총책을 방임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총책이었던 강 씨 부부가 여권 연장을 위해 방문했는데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해 범인이 대응할 시간을 준 것이다. 당시 대사관 측에서는 민원인 신분인 부부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모양새가 빠지고 부담스럽다며 신고를 거부했다. 강 씨 부부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후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금 가고싶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와이프와 만나서 이야기 해보겠다’고 한 뒤 자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잠적했다.
이번 캄보디아 범죄와 관련해 대사관의 역할이 없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대사관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지난 2년간 현지에서 접수된 온라인 스캠(사기)단지 관련 한국인 대상 납치·감금 신고 중 약 100건이 미해결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관으로의 신고자는 2023년 20명이 안 됐으나 지난해 220명, 올해 8월 말 기준 330명 등 폭증세”라며 지난 2년간 신고 된 550건 중 450건이 해결됐다고 밝혔다.
대사관으로 신고가 접수된 사례를 기준으로 450명은 구조되거나 행방이 파악돼지만 100명은 아직 어떤 상태인지 확인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김현수 주캄보디아대사대리는 ‘최근 현지 동포나 여행 온 한국인이 납치된 사례’에 대한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김 대사대리는 “최근 온라인 스캠 등 현지 치안에 대해 국내 언론 보도로 캄보디아에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했다”며 “동포사회는 한국으로부터의 투자 축소와 방문객 감소에 따른 경제 활동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군 투입’ 고려해야
캄보디아 납치·감금 사태가 국정감사 시즌과 맞물리면서 국민의 시선이 국회로 향했다. 여야 막론하고 이번 사태에 여야 모두 캄보디아 및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산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과 동시에 캄보디아에 대한 ODA 차단, 특수군사작전까지 언급하는 등 대외 압박 강도를 올리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박범계, 이언주,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사작전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가야한다”며 ‘군 투입’ 주장을 제기했다. 야당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캄보디아 군경과 협조해 우리 군이 군사작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캄보디아가 군경 합동작전을 거부한다면 ODA 투입 자금의 회수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민수 국민의힘 초고의원은 “지금 전쟁 선전포고라도 해야 맞는 것이다. 이걸 지금 협력해서 수사하자고 한다고 해서 할 문제인가”라며 “제가 봤을 때는 정말로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캄보디아 사태에 대한 정당 간의 해결 방법 제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납치·폭행·감금 당해 목숨을 잃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우리나라 국민뿐 아니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이 범죄행위에 함께 하고 있고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초국가적 범죄”라고 했다.
여야 의원들의 ‘군 투입’ 주장은 캄보디아에 대한 특수군사작전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 군경의 협력을 기반으로 군사작적을 벌이자는 주장이며 캄보디아가 이를 거부하면 지원금을 회수하는 등의 제재를 가해 캄보디아 측을 압박하는 의견이다. 학계 일부에서 군사작전의 경우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캄보디아 ‘군 투입’은 득보다 실이 더 크며 외교적 결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군사 작전 대신 ‘수사 인력 급파’에 무게를 실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여야 의원들의 질타에 “지금 말씀하신 납치 감금에 대해서는 저희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신고 건수가) 꾸준하게 증가한 상태인데 사실 심각하게 인식을 못 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며 “거기(군사작전)까지 안 가고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해 정부도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범죄단지의 한인을 구출하기도 했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30일 재외국민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대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외교공관의 기능을 ‘신고 안내’ 중심에서 ‘탐지·대응’으로 전환해 주재국의 정세, 안전 상황 및 재외국민 사건·사고 추이 등을 수집·분석하도록 한 것으로 재외공간의 인력·예산 현황에 대한 평가를 매년 실시해 외교부장관에게 제출하고 외교부장관은 그 결과를 인력·예산 편성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10월 중순을 기점으로 캄보디아 전역에 존재하던 범죄단지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이어지는 언론 보도와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 이후 대거 비워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수의 캄보디아 범죄조직 일당들은 육로를 통해 인접국인 라오스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납치된 피해 한국인들이 라오스로 끌려가고 있으며 범죄행위에 가담한 한국인들도 라오스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미 범죄단지 운영조직들 대다수가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에 새 범죄단지를 조직했으며 육지로 밀입국을 하기 때문에 출입국 기록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범죄조직들이 라오스로 이동을 했다는 보도에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은 이미 2024년부터 여행금지로 지정됐다는 공지를 올렸다. 캄보디아가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거부하고 있어 한국인 구출 및 송환이 어려운 상황 속에 범죄단체들이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이나 내전 중인 미얀마로 이동한다면 범죄 가담 한국인이나 납치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구출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