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6일 오후 8시15분께 대전광역시에 소재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의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자시스템이 마비됐다. 전산실 화대로 인해 정부 부처 홈페이지, 정부24 등 70개 정부 전산서비스가 마비됐으며 화재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했다.이번 화재로 시스템 관리 업체 직원 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국민이 직접 이용하는 인터넷망 서비스 436개 등 대전센터 내 전체 정부 업무시스템 709개가 가동 중단됐다. 또 정산실 배터리 팩 총 384개 모두가 손실됐다.
정부 업무시스템 마비 사태를 일으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는 배터리 화재 등으로 인해 서버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해 배터리를 서버와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소방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화재 원인은 ‘업무상 부주의’로 판명됐다. 배터리 이설을 위해서는 모든 전원을 차단해야 했지만 작업자들이 일부 배터리 전원을 끄지 않고 배터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로그기록에도 최초 발화한 배터리의 충전율이 90%였던 사실을 확인했지만 배터리를 옮길 때 충전율을 30% 밑으로 떨어뜨려야 한다는 업계의 안전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당시 전산실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의 배터리와 서버 사이의 간격은 약 60cm, 서버간의 간격은 약 1.2m에 불과했다. 국정자원은 지난 2022년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을 계기로 예산을 받아 화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배터리를 지하로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산실 내 배터리팩 384개를 6개 조로 나눠 옮기기로 하고 우선 1개 조를 지하로 이전 완료한 상태였으며 2번째 조의 사전작업으로 작업자가 배터리 전원을 끄고 케이블을 단자 내에서 풀고 있던 중 전원 차단 후 약 40분 뒤인 오후 8시 20분께 알 수 없는 이유로 배터리에 불꽃이 튀었다.
경찰은 5층 전산실 전기를 작업 전 차단한 내부 기록과 화재 현장의 작업자 진술 등을 종합해 당시 작업이 통상적인 전기·배선 등 작업 매뉴얼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했다. 10월1일 국회 질의에서 배터리 이전 당시 배터리 충전 용량을 충분히 낮추지 않고 작업을 한 것을 지적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내 대표 배터리 제조기업 2곳의 작업 가이드라인에는 배터리를 분리할 때 충전 상태를 30% 이하로 낮춰 작업한다고 돼 있다”며 보고 받은 적이 있는지 질의했다.
이에 이재용 정보관리원장은 “화재 발생 당시 충전 용량(SOC)은 80% 정도”라고 답했다. 또 박용성 한국ESS산업진흥회 고문은 “리튬 배터리는 전원을 차단해도 내부에 전류가 남아 있어 충격을 받으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며 “2~4시간 정도 방전 작업을 거쳐 배터리 충전율을 30%로 낮춰야 하는데 국정자원 작업자들은 전원 내린 지 30분 만에 작업을 시작해 충분히 방전을 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인 배터리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장애를 겪은 정부 시스템이 10월23일 오후 1시 기준 전체 709개 중 456개가 복구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용자가 많고 중요가 높은 1등급 시스템의 복구율은 82.5%(전체 40개 중 33개)로 올랐고, 2등급 시스템 복구율은 72.1%(전체 68개 중 49개)다.
소방 설비·방재 체계 미비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소방 설비 및 방재 체계가 미비해 피해가 더 커졌다. 화재가 발생하고 직원들이 리튬이온 배터리에 효과가 없는 ‘할론 소화기’로 진화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효과가 없는 소화기로 초기 화재 진압에 실패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정부가 배터리 화재용 소화기 기준을 내놓은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이를 통과한 제품은 아직 한 건도 없어 개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화재 진화에 사용된 ‘할론 소화기’는 분말 대신 할로겐 가스를 분사해 잔재가 없다는 장점이 있어 전산실이나 미술관 등 데이터 손상이나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해야 하는 공간에 주로 쓰인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 화재 진압에는 ‘무용지물’이다. 배터리 내부에서 화학 반응으로 온도가 1000도까지 치솟는 ‘열폭주’가 발생하면 연소가 지속해서 이뤄져 가스나 분말의 단발적인 분사로 끄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열폭주를 잡기 위해서는 액체 약제가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소방청으로부터 인증받은 소화기가 없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화기는 소방시설법에 따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형식 승인과 제품 검사를 거쳐야 유통할 수 있지만 이 절차를 통과한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소방청은 지난해 6월 아리셀 공장 사고 이후 리튬 배터리 화재가 빈발하자 같은 해 12월 소형 리튬 배터리 화재용 소화기 인증 기준을 만들었지만 국정자원 화재가 발생한 9개월의 긴 시간 동안 해당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이 없는 실정이다. 소방 관계자는 “열폭주를 막을 약제에 대한 국제 공용 기준도 없다”며 “결국 현재로선 물에 배터리를 담그는 ‘냉각’ 방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국정자원 화재 당시 정부의 늦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화재 발생 직후인 9월26일 오후 8시26분께 이미 내부적으로는 1·2등급 핵심 시스템 70개가 중단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첫 공식 발표는 두 시간 뒤인 오후 10시 20분에야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70개 시스템만 피해”라는 축소된 설명을 냈지만 실제로는 647개 전체 시스템이 마비된 사실을 중앙재난안전본부 가동 후인 하루 뒤 공개됐다. 결과적으로 화재 발생 시점과 국민들에게 실질 피해 상황이 알려진 시점 사이에 11시간 공백이 발생했다. 10월 9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대본 회의를 열고 마비된 시스템의 수를 647개에서 709개로 정정함으로써 62개의 시스템이 더 마비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기 경보 역시 늦었다. 행안부는 오후 11시 40분께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했지만 이미 전산실 배터리 수백 개가 전소하고 정부 핵심 시스템이 차례로 멈춰선 뒤였다. 전상망 전체 전원 차단이 이뤄진 것은 9월 27일 오전 6시 20분인데 중대본 가동과 위기경보 ‘심각’ 단계 격상은 2시간 뒤인 오전 8시 15분에서야 결정됐다. 이는 화재 발생 이후 12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또 화재 당시 소방대가 내부 구조와 설비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진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대전 본원을 비롯해 대구·광주 등 국가정보관리원 3개 센터 모두 소방안전 특별관리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화재 안전 조사에서 2~5층 전산실과 보안 구역이 조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대구·광주·공주 분원은 모두 받았으나 대전 본원은 현장에서 보안 및 소방 점검 중 소화 가스가 터질 우려 등을 제기해 조사에서 제외됐다.
이번 화재로 이중화 미비와 예산 논란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23년 11월 ‘국가행정망 전산마비 사태’ 이후 2024년 정부는 ‘엑티브-엑티브’ 형태의 이중화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행안부가 전면 전환이 아닌 시범사업 추진을 먼저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올해 예산은 24억 원에 그쳤다. 이는 2024년 시스템 도입 검증 컨설팅, 2025년 일부 시스템 테스트를 거쳐 202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행안부는 각 부처에 ‘1·2등급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투자 금지’ 지침을 내렸으며 올해 추진되고 있던 시스템 테스트도 국정자원 내부 전산망으로 한정됐다. 2024년 말에는 정부에서 대전센터와 공주센터를 잇는 이원화 네트워크 구축비로 75억6200만 원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61%를 삭감해 29억5500만 원만 반영됐다.
이 때문에 2024년 편성된 2025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체 예산은 5184억 원에서 5559억 원으로 375억 원(7.2%) 증가했으나 신규 편성된 재해복구시스템(DR) 예산은 30억 원에 그쳤다. 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브리핑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투자해 비용이 발생하는 것보다 시범사업을 통해 모델을 확정한 이후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민 불편으로 이어진 피해
국정자원의 정보시스템은 특정 장비 오류에 대비해 동일 센터 내 다른 장비에 매일 백업하고 별도의 물리적 공간에 전용 백업센터를 두고 있으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2만5000명의 업무용 자료 클라우드 저장소인 G드라이브에 저장된 데이터는 백업 데이터가 같은 시설에 위치해 화재로 전량 소실됐다. 국정자원에는 8월 기준 74개 기관의 국가공무원 중 19만1000여 명이 가입해 858TB가 사용되고 있었다. 다만 공무원 개인 업무용 자료 이외의 공식 결재와 보고를 통해 생산된 공문서는 공무원 업무시스템인 온나라시스템에도 함께 저장돼 있어 추후 복구가 가능했다.
행안부는 G드라이브의 경우 시스템 데이터와 달리 대용량/저성능 스토리지라 타 센터로 백업하려면 작업에 한 달 이상 걸리는 탓에 서비스 운영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어 동일한 전산실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간 클라우드 업체들이 대용량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하드디스크째로 복제 후 물리적으로 다른 센터로 이송해서라도 백업하도록 시스템을 운용중인 것을 감안하면 정부 소유 클라우드면서도 매우 무책임한 운영을 해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 전산시스템 서비스가 마비됨에 따라 △정부24 △국가법령정보센터 △국민신문고 △안전신문고 △모바일 신분증 △인터넷 우체국 등 총 96개의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특히 119영상신고시스템, 구급스마트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해 작동이 중단돼 문자, 영상, 웹 119 신고가 전부 중단되고 음성전화를 통한 119 신고만 가능했다.
이번 화재는 국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졌다. 추석을 앞두고 화재가 발생해 우체국 전산이 마비돼 배송조회, 인터넷뱅킹 등 우체국 시스템 접속이 전부 중단됐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택배를 보내려던 국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고 인터넷쇼핑몰에 입점한 중소기업들도 상품을 판매하지 못한 채 묶여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명절인 추석과 함께 긴 연휴를 앞두고 화재가 발생해 택배 조회가 불가능해짐과 동시에 배송지, 수령자 정보 등을 알 수 없어 배송에 차질이 빚었다. 9월27일 우정사업본부는 PDA를 유선 로그인으로 진행해 문제가 없는 오프라인 배달은 전산 없이 진행시키는 방안을 지시해 배송이 됐다.
화재 발생 다음 날인 9월27일 현장을 방문한 김민석 총리는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언제 시스템이 복구돼 정상화될 수 있을지 명확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정부는 국민의 일상 속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원 수기 접수, 대체 사이트, 가동, 세금 납부 및 서류 제출 기한 연장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최선을 다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윤호중 행안부 장관에게 “직접적으로 화재 피해를 입은 5층 전산실에 있던 96개 시스템의 경우, 시스템 복구와 정상화에 일정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만큼, 복구에 차질이 예상되는 시스템은 최대한 빨리 파악해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큰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3년에도 대규모 전산망 장애 사태로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번 화재도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2년이 지나도록 핵심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해서 막대한 장애를 초래한 것이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곳곳이 아예 국가 운영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전 부터가 나서서 최소한 안전 보안 시설에 관한 부분은 아예 밑바닥부터 원점에서부터 혹여라도 문제가 없는지 근본적인 조사를 전 부처를 통해서 전 시설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조사해 보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전소된 환경에서 시스템을 시일 내 무리하게 재구축하는 것보다 안정된 데이터베이스 기반 위에 시스템을 신규 구축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소재한 분원인 대구센터에 이원화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엑티브-엑티브’ 형태의 이중화 조치가 조속이 이뤄져야한다”며 “대전센터에 있는 30여개 1등급 시스템을 엑티브-엑비트 방식으로 구축하는 걸 전제해서 말하면 7000억 원 정도가 소요될 것 같다. 광주센터까지 포함하면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