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2월 시작된 의료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1년 8개월 만에 해소됐다. 보건복지부는 10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정공의 복귀로 인해 “의료체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심각 단계를 20일 0시부로 해제한다”고 밝혔다.
의정갈등을 해소하기까지 의료계와 정부 간의 줄다리기 싸움이 계속되면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국민, 환자였다. 의정갈등으로 ‘응급실 뺑뺑이’가 급증했고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많아졌다. 병상에 환자가 늘어나면서 부상, 위험 환자들의 치료와 수술이 자연스럽게 밀려나기도 했다.
올 2월,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의원실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 2~7월 병원 입원 환자와 입원 후 사망 현황을 분석했다.이에 따르면 2015~2023년 9년간 각 해의 2~7월 전국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 수는 총 4193만5183명이었다. 이 중 사망한 환자는 34만1458명으로 사망률은 0.81%였다. 그러나 지난해 2~7월 입원한 환자 수는 467만4148명, 사망한 환자 수는 4만7270명으로 사망률이 1.01%에 달했다. 의정갈등으로 생긴 ‘의료공백’으로 6개월간 3000명 이상이 사망한 셈이다.
의료파업 시작 원인…2000명 증원
전공의가 대거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이 인력 공백으로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원인에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정책이 시발점이 됐다. 지난 2월1일 정부가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이 정책은 저위험, 저강도의 비필수적인 의료행위가 필수적인 의료행위에 비해 높은 보상을 받는다는 ‘불공정 의료생태계’를 개선한다는 취지의 정책 패키지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핵심이 되는 4대 정책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의료인력 확충 △지거국 병원 육성을 통한 지역의료 강화 △특례법 및 책임보험 도입을 통한 의료사고 소송 부담 완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및 비급여·미용 억제 등이다.세부적인 내용으로 수련의 기간 연장, 개원면허제 도입, 지역인재 전형 확대, 의료사고 시 의료진의 형사책임 면제 등을 포함한다. 이 중 의대 정원 확대는 2월6일 브리핑에서 2000명 규모라고 발표됐다.
또 추가로 발표된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한덕수 총리가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 따르면 2028년까지 10조 원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끌어올리고 공공정책수가 체계를 확대해 추가 보상하며 병원의 중증 필수 인프라 유지에 따른 적자를 사후 보전하는 대인적 지불제도를 계획하고 있다.정부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자 의료계에서는 의사 및 의대생들이 반대 집단행동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정책 발표한 즉시 입장문을 통해 “의대 증원 확대는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며 의학교육 질 저하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온다”고 반박 의견을 표명했다. 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설문조사를 통해 약 88% 전공의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한다고 밝혔으며 일명 ‘빅5’로 불리는 병원 5곳도 파업에 돌입했다.또 의대생(휴학, 수업거부), 수련의(임용포기, 인턴-레지던트 미등록), 전공의(사직신청, 현장이탈), 전문의(계약갱신포기, 사직), 의대교수(겸직해제, 52시간노동준법운동, 사직), 개원의(파업) 등으로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증원은 말도 안되는 정책이라며 한 목소리로 내고 있다.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홍윤철 교수는 “정부가 적절하게 인용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으며,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권정혁 박사는 “내 보고서가 호도되는 방식으로 인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를 진행한 신영석 연구위원은 “5년 동안 해마다 2000명을 늘리고 다시 판단한다는 정부의 의견은 매우 아쉽다”라고 언급하는 등 정부와 입장 차이가 있음을 공인했다.특히 홍윤철 교수는 “의사 수 추계는 현재 시스템을 그대로 간다는 가정 하에 이뤄졌기 때문에 의료개혁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과다한 추계가 될 수밖에 없다”며 “지역 간 의료격차 등 의료개혁에 대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몇 명이냐는 의미 없는 논의”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 따르면 세 연구보고서들은 의사인력 부족은 일시적 현상으로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베이비붐 세대 이후 고령층 진입 인구의 규모가 차츰 줄어들고 전체 인구도 줄게 돼 의대 정원 확대에 따라 그 시기는 다르지만 향후 의사인력 과잉현상을 예측했는데 그 부분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등법원 판결문에서 조차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산술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적시했다.국회에서의 청문회에서 2000명 증원이 다른 근거가 더 있지 않고 그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도 보고서에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당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자신이 결정한 숫자”라고 증언했다. 이 발언으로 조 장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했으므로 ‘직권 남용’, 헌법과 정부조직법상 대통령의 사전재가권한을 침해했다며 고발당했다.의료계는 2030년 의사가 과잉이 될 것이라 분석한 연구들도 있는데 이를 제외하고 정부가 일부 원하는 보고서만 빼서 그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해서 절대적인 진리라 주장해 의정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래 걸린 의정갈등 해소

응급실 뺑뺑이와 수술 거부 등 환자들에게 수 많은 피해가 발생한 ‘의정갈등’이 마침표를 찍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면서 발령한 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단계와 비상진료체계가 1년 8개월 만에 해제된다. 지난해 2월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자 복지부는 같은달 23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건의료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 조정하고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새정부 출범 후 의료계와 소통을 재개하면서 상당수 전공의가 복귀했다”며 “진료량이 비상진료 이전 평시의 95% 수준을 회복하고 응급의료 상황도 수용 능력을 거의 회복했다”고 설명했다.복지부에 따르면 ‘의료체계 운영 안전성’의 경우 응급실은 평시 기준병상의 99.8% 수준,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평시 대비 209명이 증가하는 등 응급의료 상황도 평시 수용능력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의 및 일반의 수’도 집단행동 이전 대비 소폭 증가하는 등 의료체계가 비교적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전공의 복귀’의 경우 올해 하반기 모집을 통해 7984명의 전공의가 수련과정에 복귀해 전공의 규모가 예년 대비 76.2%까지 회복됐다. 비상진료체계가 해제되면 비상진료 명목으로 시행됐던 ‘한시 수가’ 등의 조치가 풀리며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도 종료된다. 또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효율적 운영에 도움이 되는 진료지원(PA) 간호사, 비대면 진료, 입원 전담 전문의 등의 조치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정부는 이번 의정갈등을 경험으로 반면교사로 해 앞으로는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의료의 미래를 설계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국민·의료계가 공감하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참여·소통·신뢰 중심의 사회적 논의기구인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원회’를 조속히 신설해 당면한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체계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나갈 계획이다. 새로운 의료개혁 추진체계 하에 소아·분만·취약지 등 국민들이 ‘지금’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응급실 미수용 최소화·수도권 원정 지료 개선 등 실질적 해법 모색에 지중할 예정이다.또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재활·요양·생애말기 의료개선, 기술혁신을 통해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방안도 모색해 나간다.
이와 함께 현재 지역·필수 의료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도 지속해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회의 모두발언에서 정 장관은 “지난 1년8개월간 의정갈등으로 의료현장에서 불편을 겪은 환자, 가족에게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환자 곁에서 생명을 지켜준 의료진, 119 구급대 등 공무원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관련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중증·응급 등 필수 의료 부냐의 인력 수급과 진료 환경 개선 등이 구체적 대책으로 거론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번 사태처럼 의료 붕괴 상황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언제나 남아 있다”며 “혼란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필수 의료 등 관련 제도 개선과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경보 해제 이후에도 의료 현장의 어려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무너진 현장을 복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촉구했다.
의정갈등 해소 후 남은 문제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화, 협상 등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올해 월 사직 전공의 860명이 추가 모집을 통해 병원으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860명이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전국 총 2532명이 수련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의정갈등 시작 전 수련 규모의 약 19% 수준이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에 추가 모집을 진행한 결과 860명이 합격했다. 5월 추가 모집 인원인 1만4456명(인턴 3157명·레지던트 1만1299명)의 5.9% 수준의 인원만 현장에 복귀한 것이다.
추가 모집으로 돌아온 전공의들은 지난 1일부터 수련을 재개했으며 이들을 포함한 전국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2532명으로 추산된다. 의정갈등이 발발하기 전 수련 규모인 1만3531명과 비교하면 18.7% 수준이다.보통 전공의 모집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두 차례 나눠 진행되지만 정부는 지난 5월 내 복귀를 희망하는 전공의 수가 적지 않다는 의료계 건의를 받아들여 추가 모집을 진행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가 전공의 복귀 의사 파악을 목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4794명 중 2924명이 복귀 의사를 밝혔다. 복귀 의사를 밝힌 2924명 중 ‘특정 조건 시 복귀 의향’이 2205명으로 가장 많았고 △즉시 복귀 의향 719명 등으로 나타났다. 사직 전공의와 더불어 의정갈등이 장기화되자 입영을 선택한 전공의가 급증했다. 올해 8월까지 의대생들이 군의관 대신 현역병 입영 선택을 역대 최다인 3000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회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의대생 현역병 입영자는 총 2838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의대생 현역병 입영자를 살펴보면 △2020년 150명 △2021명 214명 △2022년 191명 △2023년 267명 등으로 500명을 넘지 않았지만 의정갈등이 시작된 지난해 1363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의정갈등으로 의대생들의 휴학과 수업 거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현역병 입대를 선택하는 의대생이 늘었는데 올해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현역병으로 입대한 의대생들은 ‘육군’이 1997명(70.4%)으로 가장 많았고 △공군 754명(26.6% △해군 62명(2.2%) △해병대 25명(0.9%) 등의 순이었다.의대생들의 현역병 입영 선택은 군 생활의 복무기간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군의관과 공보 복무기간은 군사교육을 포함해 37~38개월인 반면 현역병 복무기간은 육군·해병대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 등으로 절반 수준이다.
현재 군의관 인원은 정원 2475명 중 현원 2442명으로 양호한 수준이지만 의대생 현역병 입영 급증에 따라 2029~2030년에는 군의관 등 군 의료 인력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황 의원은 지적했다. 황 의원은 “정부는 의정 갈등이 남긴 후유증을 정확히 진단하고 군의관 수급 및 현장 의료 지원 부족 문제에 대한 실질적이고 선제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