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왕따 외교’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을 감안해 정상회의 참석 쪽에 무게를 뒀지만,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이 있은 뒤 불참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지난 22일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서 “대통령은 취임 이후의 산적한 국정 현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검토해 왔다”며 “그러나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도저히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나토는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국(IP4, 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 4국)을 매년 초청해 왔다. 한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한 것을 ‘외교적 실책’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중동 사태로 인한 안보·경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국제 공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계기”라며 “불참하기로 한 것은 이 대통령의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밝혔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불참으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돼 도리어 중국과 러시아의 강압외교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나토와 여타 인도태평양지역 파트너국(IP4)으로부터는 한국의 새 정부가 동맹과 파트너보다도 중국, 러시아 및 북한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살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건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은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을 불참 사유로 들고 있다”며 “하지만 중요한 외교무대를 차버릴 만큼 급박한 국내 현안이 무엇인지 불명하며 명백한 우선순위의 오판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건 의원은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출신으로 외교관으로 업무를 역임했다.
김 의원은 “한미 실무진간 관세협상에서 미국 실무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몰라 협상이 진전되기 어렵다고 한다”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양자방문 시 결과물을 내야하는 부담감 없이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정확한 의중을 파악해 볼 찬스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우리의 나토 정상회의 불참과 이로 인한 우방국과의 균열을 좋아할 나라는 우리의 나토 참석을 비판해온 중국, 러시아, 북한일 것”이라며 “믿고 싶지 않지만, 또다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왕따 외교’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게시했다.
김대식 의원은 이날 오전 방송된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서 “지금 중동 문제, 여러 가지 현안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내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국내 문제보다 지금은 우리가 외교적인 협상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웬만하면 국제사회의 공조, 우리나라의 국익 외교 등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나토 회의에 참석해서 다양한 국익 외교를 펼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나토 불참은 이재명 정부 외교정책을 이른바 대미 자주파가 주도하겠다는 공개 선언 같다”며 “2025년 블록화된 국제정세 하에서 그런 실리도 국익도 버리는 정책은 자주파라기보다 ‘기분파’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또한 이 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한 것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하람 권한대행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고려해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한다고 한다고 했는데 관세 협상과 방위비 협상만큼 시급한 국내 현안이 있느냐”고 강조했다. 특히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오히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우방국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성이 더 크다”면서 “외신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토도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 태평양 파트너 4개국 간 별도 회동이 예정됐다고 이미 발표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천하람 권한대행은 “이재명 대통령이 2박 3일 정도 나토 다녀온다고 해서 문제 생길 일이 없다”면서 “급한 나토는 불참하고 급하지도 않은 추경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본인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무엇이 국익에 더 필요한지 살펴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토 정상회의 불참을 둘러싸고 이 대통령의 외교적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