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대형마트 모습
한산한 대형마트 모습

2011년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2012년 봄 전국 각지에서 의무휴업일 지정 조레안을 공포해 각 대형마트들에 대해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휴무를 의무적으로 강제했다. 이러한 조치에 중소상인들은 상생의 길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의무휴업일이 시행된지 13년이 지난 지금 의무휴업일은 중소상인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의무휴업일이 시행되고 잠깐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의무휴업일에 대한 효과가 나타나는가 싶었지만 온라인 시장의 등장으로 전통시장의 방문객들은 감소하게 됐다. 

대형마트 규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당시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셔틀버스 운행이 영세상인을 죽인다며 셔틀버스 운행을 중지했지만 영세상인을 살리는 효과는 전혀 없었다. 셔틀버스를 주로 운영하는 곳은 대형마트가 아닌 백화점으로 전통시장과는 다른 업태일 뿐만 아니라 셔틀버스 규제 목적이 전통시장을 살리기보다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 업체들의 요구가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2001년 ‘셔틀버스 폐지’와 2012년 대형마트 ‘의무 휴무제’를 시행한 결과 기대할만한 상생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사람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한 ‘탁상행정’으로 인해 상인들은 이전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온라인을 사용할 줄 모르는 상인들은 전통시장에 방문하는 소비자들만 매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A(68)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을 살렸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할 것”이라며 “과거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물건을 사는 시대를 지나 휴대폰으로 쉽고 상품과 후기를 보고 구매하는 패턴으로 바뀌어 전통시장 내에서도 온라인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상점을 개설하지 못하거나 잘 모르는 상인들은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시나 도 그리고 상인회에서 온라인 상점 개설 및 운영 방법을 안내하고 홍보물을 돌리고 있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이 많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의무 휴업일의 도입으로 대형마트 매출은 크게 줄었다. 2019년 들어서는 대형마트들 조차 신규 출점이 거의 없어졌고 영업부진으로 폐점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이러한 대형마트의 수요 감소가 전통시장 매출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온라인 시장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해서 굳이 전통시장을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1만 건 넘게 국민이 제안한 사안 중 ‘대형마트 규제 폐지’ 안건 중 TOP10에서도 상위 3건을 국정 운영에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대형마트 규제 폐지는 57만1415건으로 1등을 차지했다. 보수나 진보 정치적 성향에 관계 없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이기에 정치인들과 시장 관계자의 입장은 뒤로 하고 국민들의 대부분은 대형마트에 자유롭게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투표를 통해 나타났다.

2024년 1월 말부터 지자체들이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기 시작했고 같은해 4월에는 서울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 폐지 조례안이 통과됐다. 윤 정부는 대형마트 의무 휴무제 공휴일 강제 지정 폐지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대형마트 의무 휴무제 폐지 안건’에 대한 논의가 다시 멈춰설 위기에 놓였다.

대형마트 쉰다고 ‘전통시장’ 안 간다

전통시장 보호를 목적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시행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에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휴업제 등의 규제가 오히려 오프라인 유통업을 포함한 지역 경제 전반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월15일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연 130만 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업일에도 전통시장 소비는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은 농촌진흥청 소비자패널 자료를 이용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온라인몰, 슈퍼마켓의 식료품 구매 데이터를 분석했으며 분석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해 평일 의무휴업이 도입되기 전인 2022년을 기준으로 했다.

2022년 주말 식료품 구매액 분석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일요일)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 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 630만 원에 비해 낮았다. 한경연은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더라도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신 온라인 구매를 이용하거나 다른 날에 미리 구매하는 것을 선택한다”며 “구매액 분석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적 유통채널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과 2022년 요일별 평균 식료품 구매액 비교 / 자료제공 = 한국경제인협회
2015년과 2022년 요일별 평균 식료품 구매액 비교 / 자료제공 = 한국경제인협회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시행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쇼핑 이용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과 202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식료품 평균 구매액을 비교한 결과, 전통시장에서의 구매액은 55%(1370만 원→610만 원) 감소했으며 평일 기준 온라인몰 구매액은 20배 이상 증가(350만 원→8170만 원)했다. 오프라인 유통업(대형마트·전통시장·슈퍼마켓)에서의 2022년 식료품 구매액은 2015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소비자의 구매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는 2011년 1분기 114.2에서 2024년 4분기 92.0으로 감소했다. 반면 인터넷쇼핑 판매지수는 2011년 1분기 21.8에서 2024년 4분기 135.3으로 급증해 2020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쇼핑 판매액이 대형마트 판매액을 추월했다. 그 결과, 대형마트 3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최근 10년간 대형마트 52곳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202곳이 폐업하는 등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경연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형마트 의무휴업규제가 해외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라는 점을 지적했다.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종교활동 보호를 목적으로 일요일 영업시간을 제한한 적이 있지만 점포 규모에 따른 차별적 규제가 아닌 소비환경 변화에 맞춰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흐름을 보였다. 일본은 1973년 소규모 소매상 보호라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시행했으나 소비자 불편과 유통업 불황으로 2000년 폐지했다.

한경연은 단순히 대형마트 영업 제한을 통해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방식은 온라인 시장 성장과 소비자 행동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단편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된 만큰 단순 규제 중심적 접근 대신 △디지털 기술 도입 △현대적 경영 기법 적용 △지역 커뮤니티와의 유기적 연결 등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의무휴업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면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온라인, 대형마트, 전통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규제 바람직한가 

통영의 한 전통시장 모습
통영의 한 전통시장 모습

4월4일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그동안 논의해 온 ‘대형마트 규제 완화’ 논의가 멈추게 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대통령 파면 여파로 정권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 가운데 야당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강화 움직임이 감지돼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여파로 현 정부가 추진했던 대형마트 규제 완화 정책은 추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윤 정부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기존 일요일에서 평일로 전환하는 등 규제 완화 정책을 펴왔다. 여기에 더해 영업제한 시간(자정 이후)인 새벽 시간대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등 마트 규제개선 방침을 세우고 추진해 왔다.

지난 3월12일 민주당은 민생연석회의에서 민생 분야 20대 의제를 발표했다. 민생 의제에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이 아닌 공휴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마트 규제가 다시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아울러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허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대형마트 지역 협력계획 이행 실적이 미흡할 시 이행 강제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 했다. 

업계는 경기 불황 장기화에 더해 마트 규제까지 강화될 경우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2012년 유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대형마트 시장 규모는 크게 줄었으며 대규모 점포에 해당하는 대형마트의 경우 전통상업보존구역 1km 내에는 신규 출점이 제한돼 있다. 또 신규 출점 시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해 지자체의 허가를 받게 돼 있는 등 출점 절차도 까다롭다. 까다로운 출점 절차에 신규 출점이 없어지고 대형마트 점포 수는 급격히 감소했고 매출도 급감하게 됐다.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상생’하기 위한 좋은 수단은 아니다. 한국유통학회의 ‘대형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폐점한 후 주변 상권이 침체됐다. 이마트 부평점이 폐점한 이후 반경 3km에 있는 중소형 슈퍼마켓과 소매점, 음식점 등의 매출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 2023년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서울 전역 대형마트 휴업일이 주변 상권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4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인근 상건 매출액이 1.7% 감소한 반면 온라인 유통업은 13.3% 증가했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기존 소비자들은 의무 휴업일에는 굳이 대형마트 주위에 갈 필요가 없어져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대형마트 인근에 있는 중소형 가게들의 매출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대형마트 이용자 B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후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지만 의무 휴업일에 굳이 대형마트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전통시장의 경우도 대형마트가 쉬는 날에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그만이기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C(56)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대형마트를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체감될 정도”라며 “과거 마트 행사기간에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상품을 진열한 것과 달리 요즘은 2일이나 3일에 한 번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많은 인파가 몰렸던 명절 선물세트 행사 기간에는 매년 방문하는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 파면으로 대형마트 규제 완화 정책이 동력을 잃을까 우려스럽다”며 “최근 야당 중심으로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마트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는 가운데 더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매출 7조 원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만큼 대형마트 산업이 붕괴일보 직전인 시그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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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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