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시장 보호를 목적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시행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에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휴업제 등의 규제가 오히려 오프라인 유통업을 포함한 지역 경제 전반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일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연 130만 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업일에도 전통시장 소비는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은 농촌진흥청 소비자패널 자료를 이용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온라인몰, 슈퍼마켓의 식료품 구매 데이터를 분석했으며 분석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해 평일 의무휴업이 도입되기 전인 2022년을 기준으로 했다.
2022년 주말 식료품 구매액 분석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일요일)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 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 630만 원에 비해 낮았다. 한경연은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더라도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신 온라인 구매를 이용하거나 다른 날에 미리 구매하는 것을 선택한다”며 “구매액 분석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적 유통채널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시행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쇼핑 이용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과 202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식료품 평균 구매액을 비교한 결과, 전통시장에서의 구매액은 55%(1370만 원→610만 원) 감소했으며 평일 기준 온라인몰 구매액은 20배 이상 증가(350만 원→8170만 원)했다. 오프라인 유통업(대형마트·전통시장·슈퍼마켓)에서의 2022년 식료품 구매액은 2015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소비자의 구매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는 2011년 1분기 114.2에서 2024년 4분기 92.0으로 감소했다. 반면 인터넷쇼핑 판매지수는 2011년 1분기 21.8에서 2024년 4분기 135.3으로 급증해 2020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쇼핑 판매액이 대형마트 판매액을 추월했다. 그 결과, 대형마트 3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최근 10년간 대형마트 52곳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202곳이 폐업하는 등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경연은 국내 대형마트 의무휴업규제가 해외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종교활동 보호를 목적으로 일요일 영업시간을 제한한 적이 있지만 점포 규모에 따른 차별적 규제가 아닌 소비환경 변화에 맞춰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흐름을 보였다. 일본은 1973년 소규모 소매상 보호라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시행했으나 소비자 불편과 유통업 불황으로 2000년 폐지했다.
한경연은 단순히 대형마트 영업 제한을 통해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방식은 온라인 시장 성장과 소비자 행동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단편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된 만큰 단순 규제 중심적 접근 대신 △디지털 기술 도입 △현대적 경영 기법 적용 △지역 커뮤니티와의 유기적 연결 등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의무휴업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면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온라인, 대형마트, 전통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