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이사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소송이 남발될 우려'를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3월6일 논평을 내고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최근 18개월 동안 공개된 이사회 의안 수를 분석해 이사 충실의무 적용 의안 비중은 단 4%에 불과하다고 했다. 두 회사는 총 28회 이사회를 개최했고, 포럼은 이사회에서 다뤄진 91개 의안 중 이사의 충실의무 적용 대상은 단 4개로 판단했다.

포럼은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승인, 계열회사와의 영업양수도 거래 승인,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 승인 등 4건은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고 봤지만, 나머지 의안 ‘재무제표·영업보고서 승인’, ‘2024~2026 주주환원 정책 승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위촉’ 등은 이해 상충이 없어 이사가 선관주의 의무를 수행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도 경영을 하는 대부분 상장사는 이사회 의안 중 대략 5% 미만이 충실의무 적용 대상”이라며 “이런 사안에서조차 지금까지는 '일반주주의 이익침해' 여부가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이사회 실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이런 사안에서 단순히 거래 조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주주에게 공평하게 이익이 되는 거래인지 여부’를 검토하라는 것이 이번 상법 개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포럼은 삼성물산 합병, 두산 구조 개편,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상장 등 사례를 들며 “일반주주이익 침해를 통해 특정 주주의 사익을 추구하는 사안에서 특히 이런 검토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현행 상법과 실무 하에서는 일반 주주의 이익이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며 “재계는 이런 비정상적인 검토를 계속하겠다는 의미인가”라고 반문했다.

상법 개정이 기업경영을 극도로 위축시킨다는 재계의 주장 역시 “이미 성장이 멈췄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대기업이 거버넌스 개혁과 차입금 축소, 사업포트폴리오의 선택과 집중 등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투기자본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외국과 통상수교를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펴면서 국제적인 고립을 초래한 흥선 대원군 추종자라 생각된다”며 “오히려 상법 개정으로 투자자 보호가 가능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오히려 한국 투자를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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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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