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한층 강력해진 2기 트럼프 정부를 앞두고 여러모로 불리한 정책 방향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탄핵 정국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외교 라인은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환율, 금리, 물가 등 글로벌 경제의 거대한 지각 변동, 미국과 중국의 세력 전쟁과 무역 질서의 재편, 반도체와 에너지 산업의 향방,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위기를 포함한 국제 정세 등의 변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기 트럼프 시대’ 글로벌 대 격변 시작
트럼프 공약 41개, 실행할 땐 세계 발칵
국정공백 장기화, 글로벌 정세 ‘신속대응’
강경한 트럼프 정책 “그러나 기회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1월20일(현지 시각) 정오에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는 21일 새벽 2시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월8일 미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불법 이민자 추방 등 외교와 교육, 무역 등을 아우르는 무더기 공약을 취임 첫날부터 이행하기 위해 행정명령에 대량 서명할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유세 중 “취임 첫날 바로 한다”고 선언한 공약은 41개, 이를 위해 필요한 행정명령은 25개 이상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의회 입법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대통령 서명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취임 첫 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할 것을 천명한 트럼프. 이 외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24시간 이내’ 종결 △국제 기후변화 협약인 파리기후협정 탈퇴 △전기차 우대 및 친환경 정책 폐지 △트랜스젠더 여성(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의 여성 스포츠 출전 금지 △미성년자의 성전환 수술 금지 등의 공약이 즐비하다. 이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개방적 국경 정책 △총기 구매 배경 조사 확대 지침 등도 모두 손보겠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또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지 시민권’ 제도를 취임 첫날 금지할 것도 강조했다.
외교 및 정치 전문가들은 실제 대통령의 서명으로 곧바로 실행이 가능한 일부 공약이 있는 반면, 의회 통과가 필요해 시간이 걸리거나 미국만의 의지로는 이뤄지기 어려운 문제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약속한 공약을 실제로 취임 첫날 모두 실행에 옮길 경우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미국 사회에도 큰 혼란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기치로 당선된 트럼프는 한국과의 관계를 ‘거래처’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선거 유세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 ‘현금 인출기’에 빗대며 2026년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의 9배 수준인 100억 달러(약 14조5000억 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등을 통해 트럼프 측에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대행 체제인 한국은 현실적으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압박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내각이 사실상 초토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부처 사령탑은 현재 공석이며, 안보 사령인 국방부 장관의 공백도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행정부는 멈춰진 형국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집권 2기에 관세 장벽을 더 높인다면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인 대미 수출에 타격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속속히 나온다.
그러나 이처럼 글로벌 불안과 국내의 부정적 예측이 많지만 지나친 우려는 필요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국 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2기 트럼프 정부와의 교류를 넓히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과 트럼프 취임식에 한국 정부에서 조현동 주미대사,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홍준표, 나경원, 김대식, 조정훈 의원, 경제계에서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참석한다.
특히 우리 정부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정책 드라이브에 대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통상·경제안보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책 시나리오 및 영향을 분석하고, 행동계획(액션플랜)을 마련해 대응할 계획이다. 또 통상애로 해소와 조선 등 기회요인 활용을 위한 과제를 발굴하고 추가 지원할 방침이다. 대외적으로는 미 의회·주 정부 등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상호 호혜적 협력 확대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민간의 대외협력 역량을 활용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수출시장 다변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협력 국가로서의 위상 제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관세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미국 제조 공급망에 대한 우리 기업의 기여도를 적극 설득함으로써 면제를 이끌어내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다.
다만 계속되고 있는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 때문에 미국이 ‘멈춰버린 행정부’ 대한민국의 입장을 얼마나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탄핵 정국과 내수 부진, 고환율 등의 소용돌이에서 정상화를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온다. 글로벌 경제 질서를 뒤흔들 2기 트럼프 정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은 가히 거셀 것이다. 강경한 트럼프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각종 악재가 뒤섞인 현 상황에서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정치권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