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설 연휴에 재계 총수들은 어떤 취미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화려하고 환상적이기만 할까? 글로벌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내수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상황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연휴를 맞이하는 총수들에겐 그저 남의 일로 여길 뿐이다. 물론 ‘공사(公私)’가 ‘다망(多忙)’ 하여 좀처럼 편히 쉬지도 못할 위치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는 연휴 동안 자택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면서 경영구상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그들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취미생활이 세간에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한다. 또 취미생활을 넘어 CEO의 의지를 담아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전략을 갖고 각종 스포츠 발전을 주도하며 후원해 온 총수도 있다. 스포츠 분야부터 걷기, 사진감상까지 기업 총수들이 즐기는 은밀한 사생활 속 취미생활을 엿본다.
재계 리더 중에는 모터사이클과 같은 다소 위험해 보이는 취미를 가진 이가 있는 반면, 사진촬영 등 점잖은 취미생활을 갖고 있는 기업 총수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는 회장님

재계 경영자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생활은 스포츠 분야. 스포츠에 취미를 둔 재계 총수 및 경영자들은 50∼60대 나이에도 탄탄한 체력을 유지하며 활력을 자랑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에 유명한 ‘스피드광’으로 불린다. 그는 1999년 BMW모토라드 클럽 코리아(MCK)라는 모터사이클 동호회를 직접 만들어 회장을 역임했을 만큼 스피드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10여년 전 BMW 제품을 타고 유럽일주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창 모터사이클에 빠져있을 때는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서울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1000km를 달린 적도 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경영에 참여하며 바이크에는 손을 뗐지만 열성적인 성격이 사업방향에도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정원 두산 회장도 정 부회장과 같은 동호회 멤버였다. 두 사람은 동호회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정용진 부회장은 그룹 부회장이면서도 SSG 랜더스 구단주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SK그룹으로부터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때로는 파격적인 행보로 야구팬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리고 그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재계 리더 가운데선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이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해 구자열 전 LS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이 알려져 있다.
산악자전거 마니아인 구자열 전 회장은 서울 자택에서 안양 사무실까지 종종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2002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알프스 산맥을 넘는 ‘트랜스 알프스’ 대회에 도전하기도 했다.
구자열 전 회장은 최근 14년을 지켜온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사이클 종목에 대한 열정으로 ‘자전거 대부’라 불기도 했다. 그는 또 소문난 모터사이클 애호가로도 알려진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바이크 기종만 수십여 종이 넘는다고. 모터사이클 실력이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최근 아시안컵에서 축구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7위인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슈팅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하고 탈락하자 대한축구협회의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이미 12년째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아 남다른 축구사랑을 과시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 역시 평소 모터사이클이나 수영을 즐기고 철인 3종 경기에 직접 참가하는 등 운동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대기업 총수 신분에 걸맞게 점잖은 취미를 갖고 있는 오너들도 있다. 사실 CEO들이 즐기는 취미생활은 사진 찍기, 마라톤, 걷기, 서예, 미술·음악 감상 등 일반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이 소탈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색적이라는 평가다.
고 구본무 LG 전 회장은 ‘새박사’로 알려졌다. 지난날 여의도 트윈타워 동관 30층 집무실에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구 전 회장은 망원경으로 한강 밤섬에 있는 야생 조류를 관찰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특히 경영 아이디어를 찾을 때 꼭 이곳을 찾았다는 전언. 구 회장은 단순히 새를 관찰하는 것만이 아니라 겨울철이 되면 철새 보호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기도 했다.
반면 구 전 회장의 야구사랑도 유명했다. 1990년 MBC청룡을 인수해 LG트윈스 창단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았고, 2000년에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를 찾기도 했다.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 구광고 현재 LG 회장 역시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다.
구본무 전 회장의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전통식품에 푹 빠졌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가 되던 해인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그룹 경영을 장남 구본무 전 회장에게 맡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충남 천안에 있는 연암대학 인근의 농장에서 버섯 등을 재배하며 그룹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된장,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박용만 전 두산 회장은 디지털 기기 수집광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최신 기기를 써보고 그 소감을 SNS에 올리는 재미에 흠뻑 빠졌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이 두산 회장 재직 시절 회사 말단 직원들과도 SNS로 대화를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이미 재계에 알려졌던 화젯거리. 기존 대기업 회장 이미지를 벗은 친근한 모습으로 자주 네티즌과 소통하며 현재 수 만여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사진 촬영 실력도 프로급이다. 박 전 회장은 사진전을 기획할 정도로 사진 촬영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수 양희은의 앨범 재킷 사진도 박 회장이 촬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산家에서는 사진촬영이 취미인 이가 또 있다. 박용만 회장의 형인 박용성 전 회장도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닐 정도로 사진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박 전 회장이 즐겨 찍는 피사체는 야생화다. 소박하면서도 진귀한 야생화를 포착해 사진 속에 담는 것을 즐기는 박 회장은 지난 2010년 직접 찍은 강원 평창의 야생화로 꾸민 2010년 달력을 제작해 국내외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목받았다. 사진이라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도 빠지지 않는다. 조 전 회장 또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으로 신년 달력을 만들어 온 바 있다.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은 주변사람들에게 만보기를 나눠줄 정도로 평소 걷기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했다. 1948년생인 그는 평소 동년배에 비해 신체나이가 무척 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주위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허 회장은 점심약속이 있더라도 2㎞ 이내의 거리면 걸어 다니고 틈만 나면 전철을 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허 전 회장은 자택에서 홈시어터를 통해 오페라 DVD를 보는 것으로 여가를 즐기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같은 오페라를 여러 버전으로 감상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미(美)를 창출하는 CEO답게 건축·미술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스스로 미술평론가를 꿈꿨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높다. 그는 해외 출장을 갈 때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 현지 미술관을 꼭 찾는다고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을 둘러보고 도록을 구입해 읽은 후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도록 회사에 기증한다. 아모레퍼시픽에는 그림이나 예술 관련 서적 등이 많다.
총수들의 남다른 스포츠 사랑
신동빈 롯데 회장은 야구 관전을 취미생활로 삼고 있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의 중요한 경기가 있을 경우 직접 야구장에 나가는 열렬한 팬이라는 것. 야구는 이미 해당 기업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 구단을 통해 총수들이 가끔씩 찾아 관람하기도 한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나, 한화의 김승연 회장 등도 가끔씩 야구장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기업 총수들은 개개인의 취미를 넘어 각종 스포츠 종목에 애정을 갖고 있다. 총수들의 스포츠 사랑은 이미 재계에서 널리 알려진 화잿거리. 이들은 체육계 안팎에서 광폭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을 달성하고, 하계·동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 5번째 국가. 이는 국내 기업들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지원은 과거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스포츠에만 집중됐던 이른바 ‘스폰’이 비인기 종목에도 지원되는 추세로 이어지게 됐다. 특히 단순 후원의 차원을 넘어 기업들은 그 기업 CEO의 의지를 담아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전략을 갖고 스포츠 발전을 주도해왔다. 그렇다면 재계 회장님들은 어떤 스포츠에 관심을 두고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까지 활동한 바 있다. IOC 위원은 세계 스포츠를 움직일 수 있는 막중한 임무의 자리. 이 전 회장은 특히 동계스포츠의 기본종목인 빙상에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97년부터 대한빙상연맹을 후원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도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부터 1997년까지 4차례나 회장직을 맡아 지원을 시작한 이래 아들 정의선 회장이 뒤를 이어 30년 가까이 양궁 선진화에 힘쓰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 회장의 양궁 사랑은 재계에서도 유명한데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는 등 선수들을 격려하는 덕분에 한국 양궁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걷기’를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 1998년부터 15년째 축구단 구단주를 맡을 정도로 축구사랑이 남다르다고 알려졌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직접 경기를 관전하는 한편, 해외전지훈련장도 직접 찾아가 선수단을 격려한 바 있다.
비인기 종목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핸드볼은 SK그룹이 후원하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핸드볼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데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기도 했다. 그의 핸드볼 사랑은 재계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국내 핸드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그룹은 승마와 인연이 깊다. 승마 후원은 한화그룹 창업주 고 김종희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종희 회장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외국에서 말을 구해와 국가대표팀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승마발전에 기여했다. LG전자는 리듬체조에서 손연재 선수를 공식 후원하고 있다. 국내외 훈련은 물론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구자열 전 LS그룹 회장의 사이클 사랑으로 대한사이클연맹이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고 포스코는 두뇌 스포츠로 불리는 바둑과 체조를, 한진은 탁구, 한화는 복싱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의 비인기 스포츠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취미로 엿보는 경영철학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취미생활’이 세간에 주목받는 이유는 재계 총수의 ‘노는 방식’에서 경영철학도 살짝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류를 관찰하며 멀리 내다보는 구본무 전 회장의 취미 생활은 LG그룹의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철학을 여실히 보여준 바 있고, 미(美)를 창출하는 CEO답게 미술의 취미를 둬 화장이 얼굴에 그리는 미술이라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허창수 전 GS 회장의 걷기 습관은 신중한 GS그룹의 경영철학과 비슷하고, 사진을 찍으며 SNS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취미를 가진 두산家의 취미도 패션계열을 갖고 있는 두산그룹의 경영철학에 그대로 반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