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회담 불발’ 허무하게 막 내린 정상외교 데뷔전
숨가빴던 외교 데뷔전…韓·日 미래지향 관계 기틀 마련 ‘선방’ 당선 이후 ‘친중국 정권’ 외교 노선 의혹 ‘완화’ 친화력 ‘눈길’ 트럼프 조기귀국 韓·美 회담 불발…G7 방문 의미 퇴색 지적도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치고 캐나다 현지 시각으로 6월17일 오후 귀국길에 올라 한국 시각 19일 오전 1시16분 서울공항에 도착하며 1박 3일간의 숨 가쁜 외교 일정을 마쳤다. 이른바 이 대통령의 ‘첫 외교무대 데뷔전’이었다. ‘국익중심 실용외교’, ‘정상외교 복원’ 등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이재명 정부 외교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였다.
“정상외교 복원” 자평
“이 대통령의 G7 참석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과 새 정부 출범을 널리 알리는 첫 국제무대”, “전 세계에 ‘민주 대한민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이자 6개월간 멈춰있던 정상외교를 재가동하는 출발점” _ 대통령실 브리핑 중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방문 첫날인 6월16일 남아공 대통령, 호주 총리와 양자 회담을 한 데 이어 17일 G7 회원국과 초청국이 참여하는 확대 세션을 전후로 일본을 포함한 7명의 정상과 연쇄 회담을 나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 등과 회담을 가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UN,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나 국가연합체 수장 및 관계자와도 만나 국제 공조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총리와 한일 협력 심화 및 셔틀 외교 복원, 한미일 공조의 지속적 유지·발전 등에 합의하는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여러 차례의 양자 회담은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자평하고 “최근 몇 년간 겪었던 국격 하락과 외교 소외, 신뢰 저하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우리 위상을 다시 높이겠다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래를 주도할 핵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이번 방문에 ‘정상외교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이 대통령의 공식 일정 종료 뒤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한국의 정상외교는 완전히 복원됐다. G7 플러스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분명히 한 성과가 있었다”면서 “앞으로 이재명 정부는 정상외교를 더 높은 단계로 강화하는 동시에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적극 실천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행군 일정을 소화한 G7 정상회의가 막을 내리자 외교 일각에서는 ‘이재명식 실용 외교’가 일단 안착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일각에서는 ‘친중국 정권’이라는 외교 노선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었지만 이번 G7 정상들과의 다각적인 교류, 일본·EU·UN 등 다자외교 채널 강화, 브라질·호주·영국 등 자유주의 진영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균형 외교’ 노선을 명확히 보여줬다.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과거 보수 정부가 지향했던 의제와 가치가 양국 정상의 대화에 그대로 담겨 미래지향적 관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각국 정상과의 실질적 협력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모든 양자 회담에서 빠지지 않고 다뤄진 키워드는 바로 ‘경제 협력’이었는데, 이 대통령은 △공급망 안정화 △청정에너지 △핵심광물 △AI 기술 △방산 △기후 대응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첨단 기술력과 산업 역량을 강조하며 ‘상호 윈·윈 협력’의 외교적 틀을 제시했다. ‘형식보다 실익’을 강조해왔던 것을 해외 무대에서 그대로 어필한 셈이다.
韓·美 정상회담 불발 ‘아쉬움’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불발됨에 따라 이 대통령의 G7 방문 의미가 퇴색됐다는 일각의 지적도 제기된다. 확대 세션 전후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긴장이 고조되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상황을 이유로 급거 귀국하며 무산됐다.
한미관계는 ‘포괄적 전략동맹 (Comprehensive Strategic Alliance)’으로 칭한다. 윤석열 정부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동맹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거듭났다. 이는 미국의 동맹관계 중 최상위에 해당된다. 1순위는 핵심 글로벌 안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이다.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다섯 개 국가가 참여하는 정보기관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 다음이 한국,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2순위 그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동맹 관계인 한국의 신임 대통령과 만남을 뒤로한 채 G7을 떠났다는 사실은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중대 사안’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무력분쟁으로 심각해진 중동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급히 귀국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캐나다와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정상들과는 잇따라 양자회담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측으로서는 가장 불편한 대목일 수 있으며, 미국이 고의적으로 한국을 ‘패싱’ 하려고 한 논란의 여지는 분명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다. 한편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을 G7과는 별도의 사안으로 재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6월 하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할 경우, 이때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